KIM&BAE NEWS | LEGAL NEWS

Jae Bin Hwang

26 Aug , 2013

저는 이 곳 김&배로 오기 전, 각종 미국 법정 드라마에 거의 ‘중독’ 되어있었습니다. 좋은 차를 타고 다니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먹고, 특급 호텔에서 휴가를 즐기며 그 와중에 고객들과의 미팅도 소홀히 하는 법이 없고, 법정에서는 사건에 대한 전문인 못지않은 지식으로 무장한 채 언어의 술사로 빙의하여 재판을 승리로 이끌어 내고. 이 모든 것들은 변호사를 꿈꾸는 제게 단순히 ‘멋지다’ 그 이상의 단어로 다가왔었습니다.

하지만 인턴십 기간 동안 몸소 부딪치고 경험하고 느꼈던 변호사, 그리고 그들이 일하는 로펌이라는 곳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로펌이라는 단어에 걸맞게 주어지는 업무량과 업무의 난이도, 그리고 직원들의 피와 땀. 그것이 저의 짧은 인턴십을 대변해주는 문구입니다. 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학부생의 신분이요, 아무런 업무 경험도 없는 제게 떨어지는 일이라곤 제 키보다 더 높이 쌓여있는 문서들을 스캔하여 메인 서버에 저장하는 일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미국 땅을 밟기 훨씬 전부터 복사기와 친해질 것이라는 주변사람들의 말을 듣긴 했으나, 실제로 그런 상황에 맞닥뜨리니 좀 성에 안 차기도 했으나, 한 편으로는 회사에 가서 그냥 멍하니 앉아 있다가 시간만 때우고 퇴근하는 처지의 인턴들도 많은 것을 감안하면 운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었습니다. 몇 백, 몇 천 장의 문서들을 스캔하는 일이 그저 단순 노동이라고 생각한다면 말 그대로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는 일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바라보기로 결정하고, 전공 서적에서도 보지 못했던 따끈따끈한, 현재 진행 중인 사건들의 문서들을 눈앞에서 보며 저만의 내공을 쌓아간다는 기분으로 임하였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방송용 대본 작성부터 각종 컴퓨터 프로그램 업무, 그리고 끝에 가서는 소송 문서들 정리 작업까지 해야 할 일의 범위나 종류가 다양해졌고, 그와 함께 커져가는 부담감도 무시하지 못했습니다.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문구가 있습니다. 윤원기 부장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다른 회사 일들도 그렇겠지만, 이 법조계는 더 힘듭니다. 일을 빨리 잘 해야 합니다. 일을 천천히 잘 해서도 안 되고, 실수는 절대로 용납이 안 됩니다.’ 모든 직장 상사들이 부하직원들로부터 원하는 것이겠지만, 그렇게 직접적으로 일을 빨리 잘 해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 느껴진 부담감이란 이루 말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제 안에서 솟구치는 도전 정신 또한 적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김봉준 대표님은 ‘이 회사는 변호사들이 잘나서 이렇게 큰 게 아니야. 말 그대로, 직원들의 피땀이 곳곳에 숨어있어.’ 라는 말을 들을 때 괜히 긴장하라고 하는 소리인 줄 알았으나 실상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땀 흘리는 건 부지기수고, 일명 블루 칼라(Blue Collar) 시간이면, 작업을 할 때 저도 모르는 사이에 손과 목, 허리 등 여기저기에 상처를 입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 정도로 직원들은 회사에 ‘충성’을 해야 했고, 그 와중에 김&배가 한인 로펌으로서의 위상을 한 단계 더 높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한 가지 확실했던 것은 제가 파견 온 회사 ‘법무법인 김&배’에 비하면 공군 조종사들과 일했던 군 복무 2년은 정말 천국과도 같았습니다. 상대적인 비교일 뿐, 결코 공군 25개월이 쉬웠다는 말은 아닙니다. 제 어깨를 가장 짓누르고 있던 것은 ‘책임감’이였습니다. 그와 함께 학생에서 직장인으로 넘어가는 그 과도기의 무수한 좌절감 또한 느꼈습니다. 학교에서 공부를 게을리 하여 원했던 학점을 못 받았을 경우, 저 혼자 좌절하거나 혹은 훗날 입사할 때 약간의 피해를 보는 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여기선 나의 실수 하나로, 하다못해 오타 하나만으로도 회사의 패소율이 몇 포인트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미 동부지역을 강타했던 2012년 태풍 Sandy 이후 한 달에 한 두 번씩은 사내 네트워크 시스템이 먹통이 되곤 했습니다. 그럴 때 마다 마케팅 부서의 직원 한 명과 제가 여기저기로 불려가며 해결해달라는 원성을 듣곤 했는데, 한 번은 팩스가 말썽을 부린 적이 있었습니다. 몇 가지 다양한 수리 시도 끝에 결정한 것이 팩스 라인 구멍에 연결된 선을 새로 교체하는 것이었는데, 그 작업이 끝난 다음날부터 팩스 기능이 완전히 작동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한 두 시간 그러려니 하다 말겠지, 라고 안일한 생각을 잠깐 가졌으나 문제는 더 커지고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여러 부서의 업무들은 마비가 되고, 저는 후회감과 자괴감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다. 사표를 쓴다고 해결 될 문제도 아닌 것이었습니다. 결국 새로운 팩스기를 하나 구입하고 난 뒤에서야 다시 팩스가 제대로 기능하기 시작했습니다. 스물 네 살의 저로선 감당하기 벅찬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분명히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었습니다. ‘책임’이라는 말이 엄청나게 무서운 말이라는 것을.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법학과 복도에 붙어있던 인턴십 공고문을 모른 척 한 채 그저 한국에서 마냥 책만 파고드는 법대생으로 1년을 보냈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떤 생각으로 지내고 있을까? 물론, 또 다른 기회를 쫓아 살아갈 수도 있었겠지만 추측하건대 주변과 끊임없이 비교하는 제가 되어 상당히 지루하게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이는 이런 기회를 그저 타국에서 몇 개월 동안 ‘놀고 온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이는 청년실업 삼백만의 시대에 무슨 어학연수 같은 인턴이냐며 비아냥거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체험하고 받아들인 김&배는 끊임없이 도전해야만 하고, 그래야만 살벌한 미국의 법조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 그대로 뼛속까지 새길 수 있는 교훈을 하나 얻게 해 주었습니다. 죄송할 짓은 하지 말아야 하고, 일은 빨리 잘 해야 하며, 그와 동시에 직원들과의 관계도 서먹서먹하지 않아야 하고. 이 모든 것들이 후에 제가 무엇을 하든지 간에, 하다못해 미국에서 막걸리 장사를 할지언정 저의 내면에 깊숙한 버팀목과 끈기가 되어 줄 것이라 믿습니다. 법무법인 김&배에서의 인턴십을 저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독한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라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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